종교 없는 시대에도 믿음은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세속화가 가속화된 현대 사회, 종교의 영향력은 줄어드는 듯 보이지만, 믿음 자체는 여전히 강력하게 존재합니다. 사람들은 왜 종교를 떠나면서도 또 다른 형태의 '믿음'을 찾아 헤매는 걸까요?
신을 떠났지만, 믿음을 떠나지 못한 인간
지금은 '탈종교화 시대'라고들 합니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종교에 대한 신뢰가 눈에 띄게 줄고 있고, 전통적 신앙보다는 개인적 가치나 취향을 우선시하는 흐름이 강해지고 있습니다. 한국의 종교 인구도 통계상 지속적으로 감소 추세에 있죠.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은 여전히 무언가를 믿습니다. 종교는 내려놨지만, 그 빈자리를 과학, 정치, 성공, 운명, 혹은 어떤 ‘철학적 세계관’이 대신 채우고 있습니다. 인간은 무언가를 믿지 않고서는 살아가기 힘든 존재라는 말이, 점점 더 설득력 있게 다가옵니다.
그렇다면 질문이 생깁니다. 도대체 우리는 왜 그렇게 믿음을 갈구하는 걸까요?
믿음은 인간의 '정신적 생존 장치'
우선 심리학적으로 볼 때, 믿음은 불확실한 세상 속에서 인간이 정신적 안정을 찾기 위한 일종의 생존 전략입니다. 삶은 언제나 예측 불가능하고, 고통과 혼란의 순간이 존재하죠. 이럴 때 ‘믿음’은 방향을 주고, 해석을 가능케 하며, 의미를 부여해줍니다.
고통에 의미를 부여하지 못하면 절망이 되고, 의미가 있으면 그것은 ‘시련’이 됩니다. 이 차이는 아주 크죠. 종교가 제공하던 ‘해석과 위로’의 역할을 지금은 다른 신념 체계가 대체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컨대 자기계발, 별자리, MBTI, 심지어 ‘운명론적 주식 투자’ 같은 형태도 이에 포함될 수 있습니다.
이런 현상을 심리학자들은 의미의 욕구(Need for Meaning)라고 설명합니다. 단지 뭔가를 설명하기 위함이 아니라, 내 삶이 우연과 혼돈 속에서도 이어질 수 있다는 확신을 주는 것이죠. 결국 종교가 사라져도 믿음은 여전히 인간 안에 살아남습니다.
믿음은 이성의 반대말이 아니다
일부 사람들은 믿음을 이성과 대립되는 개념으로 오해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믿음은 꼭 ‘비이성적’이거나 ‘맹목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많은 경우, 믿음은 이성으로 해결할 수 없는 영역에서 작동합니다.
예를 들어 인간 관계 속 신뢰, 사랑, 희망 같은 감정은 과학적으로 완전히 설명되기 어렵지만, 우리는 그것을 믿음의 형태로 유지합니다. 누군가를 믿고, 미래를 기대하고, 보이지 않는 가능성을 선택하는 행위 모두가 작은 ‘종교적 행위’라고 볼 수도 있죠.
그렇기에 종교가 아니더라도, 인간은 끊임없이 어떤 가치를 믿고, 그것에 따라 삶을 설계합니다. 믿음이 없다면 삶은 지극히 계산적인 선택의 연속이 될 뿐이며, 그것은 곧 인간성의 상실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현대 사회 속 새로운 '믿음의 대상들'
그렇다면 오늘날 사람들은 무엇을 믿을까요? 흥미롭게도 종교가 아닌 다양한 것들이 믿음의 대체재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첫째, 자기 자신입니다. ‘나는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할 수 있다’는 믿음은 현대인의 가장 강력한 신념 중 하나입니다. 이른바 ‘자기계발 문화’는 단지 능력 향상을 넘어, 신앙적 차원의 헌신과 반복을 요구합니다.
둘째, 집단과 이념입니다. 정치적 정체성이나 사회 운동, 팬덤 문화까지 포함해, 특정 집단에 대한 소속감과 헌신은 과거의 종교 공동체와 놀랍도록 유사한 구조를 보입니다. 이들은 상징, 의식, 교리(가치관), 경전(자료 공유), 사제(인플루언서) 등의 요소를 갖추고 있습니다.
셋째, 데이터와 과학입니다. '객관적인 수치', '근거 중심의 판단'에 대한 절대적 신뢰는 새로운 형태의 신념 체계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과학은 믿음이 아닌 검증의 영역이라는 반론도 있지만, 대중에게 있어 과학은 때때로 ‘이해할 수 없는 힘’으로 받아들여지며, 거의 신격화되기도 합니다.
믿음 없는 삶은 가능한가?
이쯤에서 한 번 생각해볼 만한 질문입니다. 우리는 과연 아무것도 믿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요?
정답은 ‘거의 불가능하다’에 가깝습니다. 우리는 매일 믿음을 바탕으로 결정을 내리고 살아갑니다. 버스 시간표가 맞을 것이라는 믿음, 친구가 약속을 지킬 거라는 믿음, 뉴스가 사실일 거라는 믿음까지. 이처럼 믿음은 삶의 전 영역에 스며들어 있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무엇을 믿느냐’보다도 ‘어떻게 믿느냐’입니다. 신념이 타인을 해치지 않고, 나를 맹목적으로 몰아가지 않도록 ‘열린 믿음’, ‘성찰하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는 말이죠.
결론 : 종교는 줄어도, 믿음은 계속된다
종교 없는 시대는 왔지만, 믿음 없는 시대는 오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불확실한 삶 속에서 의미를 찾고, 안정을 원하며, 소속감을 갈구합니다. 그 모든 욕구는 결국 믿음을 통해 채워집니다. 어쩌면 이것은 신을 찾을 수 밖에 없도록 인간이 설계되었다는 증명일수도 있습니다.
지금의 믿음은 과거보다 더 다양하고, 더 빠르게 변하며, 때로는 더 위험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동시에, 더 인간적인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절대적 진리보다, 다양한 믿음이 공존하는 사회. 그것이 바로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의 특징 아닐까요?
종교를 넘어선 믿음, 그 자체가 우리를 설명하는 키워드가 되고 있습니다. 원래 종교는 맹목적인 구절을 믿는게 아니라, 깊은 묵상을 통해 진리에 접근해 나가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종교 없는 시대, 정말 지금은 종교 없는 시대일까요? 아니면, 더욱 객관적으로 종교적 탐구가 용이해진 시대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