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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같은 편’에게 관대해지는가?

by throughall 2025. 5. 17.

우리는 왜 ‘같은 편’에게 관대해지는가?

 

우리는 왜 ‘같은 편’에게 관대해지는가?

비슷한 잘못이라도 상대 진영이 하면 분노하고, 내 편이 하면 이해하려 합니다. 사람들은 왜 이렇게 ‘같은 편’에게는 느슨해지는 걸까요? 편향된 도덕 기준의 심리적 뿌리를 분석해봅니다.

‘내 편’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심리적 무게

어떤 사람이 실수를 했을 때, 우리는 본능적으로 그 사람과 나의 관계부터 떠올립니다. 낯선 사람의 잘못에는 쉽게 분노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인물이나 같은 집단 소속이라면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말로 넘어가곤 하죠.

이러한 태도는 단순한 감정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이 가진 소속 기반의 도덕 판단 구조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객관적인 기준보다, 관계적 기준에 따라 도덕적 판단을 내리는 경향이 강합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이렇게 쉽게 ‘내 편’에게 관대해지고, ‘저쪽’에게는 엄격해지는 걸까요?

도덕은 절대적이지 않다: 집단 중심의 판단 구조

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는 ‘도덕은 본능이고, 이성은 변호사다’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먼저 직관적으로 반응한 뒤, 그 판단을 정당화할 논리를 뒤늦게 끌어온다는 것이죠. 그 직관은 대체로 ‘소속감’에서 비롯됩니다.

같은 편의 잘못에 대해선 “그래도 의도가 나쁘진 않았잖아”라고 말하면서, 반대편의 잘못은 “이건 절대 용서할 수 없어”라고 반응합니다. 이는 집단 중심 도덕 판단(in-group morality)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우리 뇌는 도덕성을 절대적 기준으로 평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누가 했느냐’에 따라 판단의 기준이 달라지는 상대적 구조에 가깝습니다. 이런 메커니즘은 진화적으로도 집단 생존에 유리했기 때문에 오랫동안 유지되어 왔습니다.

정치와 팬덤, 도덕의 이중잣대가 작동하는 곳

이중잣대는 특히 정치 영역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같은 사건도 지지 정당에 따라 완전히 다른 평가가 나오죠. 부정부패, 막말, 사생활 논란조차도 내 편이냐 아니냐에 따라 정당화되거나 비난받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팬덤 문화에서도 나타납니다. 같은 행동을 했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이라면 "그럴 수 있지"로 넘어가고, 타 팬덤 연예인이라면 끝까지 몰아붙이는 모습은 흔합니다. 여기엔 편향된 정체성 방어 기제가 작동하고 있습니다.

‘내가 속한 집단’의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 우리는 때로 도덕성을 희생하기도 합니다. 더 나아가, 같은 편의 잘못을 지적하는 사람에게는 “너 진영을 배신했냐”는 반응까지 나타나죠. 이쯤 되면 도덕은 개인의 기준이 아니라, 집단 결속의 수단이 됩니다.

같은 편에게 관대하면 사회가 무너질까?

물론 ‘내 편’을 더 이해하고 싶은 감정은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문제는 이 감정이 도덕적 무감각으로 이어질 때입니다. 잘못을 눈감고, 책임을 외면하며, 심지어 정당화까지 하게 된다면, 결국 사회 전체의 도덕 기준은 무너지게 됩니다.

이러한 구조는 불신을 낳고, 분열을 심화시키며, 정작 공정해야 할 문제들이 감정 싸움으로 퇴색됩니다. 우리는 자신이 편드는 집단을 보호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 집단의 윤리적 기반을 스스로 무너뜨리고 있는 셈이죠.

가장 위험한 것은 “지금은 편을 나눌 때가 아니다”라는 말조차 배신처럼 들리는 분위기입니다. 이런 사회에서는 자기 반성과 내부 비판이 실종되고, 도덕은 진영 논리 속에서 소비되는 도구가 되어버립니다.

도덕적 일관성을 회복하기 위해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 편향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완전히 자유로워질 수는 없지만, 자각하는 태도만으로도 큰 변화가 시작됩니다.

첫째, ‘내가 왜 이 판단을 내리는가’ 스스로 질문하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감정에 반응하기 전에 그 판단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집단 보호 본능은 아닌지 성찰해보는 겁니다.

둘째, 내 편 안에서도 비판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진짜 건강한 공동체는 비판을 허용하며, 내부 성찰을 통해 스스로를 정화할 수 있어야 합니다. 침묵이 충성이 되면, 그 집단은 결국 스스로 무너집니다.

셋째, 타 집단에도 공감할 수 있는 여유를 갖는 일입니다. 이해는 동의가 아닙니다. ‘그들’의 입장에서 한 번이라도 생각해보는 태도는, 적대 대신 대화를 가능케 합니다.

결론 : 관대함은 도덕의 기준이 아니라, 방향의 문제

우리가 같은 편에게 관대해지는 이유는 인간의 본능이자, 생존 전략입니다. 하지만 이 본능이 도덕을 왜곡하고 사회의 공정성을 해친다면, 우리는 그 관대함의 방향을 재고해야 합니다.

진짜 도덕성은 ‘적을 비판하는 용기’보다, ‘내 편을 비판할 수 있는 용기’에서 나옵니다. 감정이 앞서더라도, 잠시 멈추고 생각해보는 태도. 그것이야말로 지금 이 시대가 가장 절실히 요구하는 윤리적 성숙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