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현실보다 이상을 믿고 싶어할까?

현실은 불완전하고 불편합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더 나은 미래, 정의로운 세상, 완전한 사랑을 꿈꾸며 이상을 좇습니다. 우리는 왜 이렇게도 ‘이상’을 믿고 싶어할까요? 인간 심리와 사회적 욕망의 교차점에서 그 이유를 탐구합니다.

현실은 견디기 어렵고, 이상은 위로가 된다

일상은 반복되고, 사회는 복잡하며, 인간관계는 피로합니다. 이런 현실의 한가운데에서 우리는 종종 마음속으로 탈출구를 찾습니다. 바로 이상(ideal)입니다. 더 나은 사회, 더 정의로운 세상, 더 완벽한 나 자신에 대한 상상 말이죠.

심리학적으로, 이는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현실은 불확실성과 결핍의 연속이기 때문입니다. 이상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현실 앞에서 감정적으로 균형을 잡을 수 있게 해주는 일종의 ‘심리적 안전장치’입니다.

이상은 현실을 부정하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을 견디게 만드는 힘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때때로 진실보다 희망을, 사실보다 이상을 믿고 싶어합니다.

진화심리학적 관점에서도 인간은 단순한 생존을 넘어 더 나은 삶에 대한 욕구를 품도록 진화해 왔습니다. 목표를 세우고, 꿈을 꾸고, 더 나은 조건을 추구하는 본능이 있었기에 인류는 기술을 발전시키고 문명을 이룩할 수 있었습니다.

즉, 이상주의는 비현실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 생존 전략의 일부이기도 합니다. 비록 그것이 지금 당장 실현 불가능한 꿈일지라도, 그것을 믿고 나아가는 행위 자체가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는 셈이죠.

우리는 본능적으로 '지금보다 더 나은 것'을 상상하고, 그것이 실현되리라는 믿음을 통해 삶의 동력을 유지합니다. 이상은 현실의 대체물이 아니라, 현실을 넘어서기 위한 도구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발생합니다. 이상이 현실을 넘어서서 현실을 왜곡하거나 무시하게 될 때, 우리는 비이성적인 신념에 빠지게 됩니다. 정치적 선동, 극단적 종교, 허위 정보에 대한 집단적 맹신은 대부분 ‘이상’을 전제로 움직입니다.

예를 들어, 완벽한 정의, 절대적 평등, 모두가 행복한 사회와 같은 이상은 매력적이지만, 그 실현 방법이 구체적이지 않거나 타인의 권리를 침해한다면 오히려 위험한 방향으로 흐를 수 있습니다.

즉, 이상을 믿는 것은 좋지만, 그것이 현실에 대한 관찰과 비판을 차단하는 순간, 그 믿음은 현실 도피가 되고 맙니다. 이상은 방향이 되어야 하지, 현실을 대체하는 허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공통의 이상은 공동체를 형성하는 데 유리합니다. “우리는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다”, “정의는 반드시 승리한다”는 문장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소속감을 줍니다.

심지어 현실에선 갈등을 겪는 사람들도, 이상 앞에서는 연대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이상이 가진 집단적 흡인력입니다. 이 점에서 이상은 단지 개인의 내면적 욕망이 아니라, 사회적 통합 장치로도 작용합니다.

정치, 종교, 교육, 예술… 이 모든 영역은 결국 ‘현실 너머의 무엇’을 추구하고 제시하는 공간입니다. 우리는 이상을 통해 서로를 설득하고, 미래를 제안하며, 지금의 불완전함을 견뎌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상을 포기해야 할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이상은 여전히 우리 삶의 엔진입니다. 다만 현실이라는 프레임 안에서 이상을 조율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가장 이상적인 태도는, 현실을 정확히 인식하되, 이상을 통해 방향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꿈꾸되 도망치지 않고, 믿되 맹신하지 않는 태도 말이죠.

즉, 이상을 목표로 삼되, 그것을 향해 나아가는 매 순간의 현실적 제약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일. 그것이야말로 이상을 현실로 만드는 유일한 방법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이상을 믿고 싶어합니다. 그것은 나약함이 아니라 인간다움입니다. 그러나 그 믿음이 현실에 뿌리내리지 못하면, 허상으로 끝날 수도 있습니다.

이상을 포기하지 말되, 현실을 도구로 삼아 그 이상에 다가가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불완전한 지금을 부정하기보다는, 그 위에 더 나은 내일을 쌓아가는 일. 그것이 우리가 이상을 꿈꾸는 진짜 이유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