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열된 사회, 그 심리적 배경은 무엇일까?
정치, 세대, 젠더, 이념… 오늘날 우리는 점점 더 ‘우리와 그들’로 나뉘어가고 있습니다. 사회가 분열되는 현상은 단순한 의견 차이가 아니라, 인간 심리의 복잡한 작용에서 비롯된 결과입니다.
갈등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는가?
의견 차이는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하지만 최근의 사회는 단순한 차이를 넘어서 극단적인 분열과 적대의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다르다’가 아니라 ‘틀렸다’, ‘위협적이다’로 인식되는 현상이죠.
뉴스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정치적 입장에 따라 전혀 다른 사실을 받아들이고, 같은 사건을 두고 서로 정반대의 해석이 나옵니다. 세대 갈등, 젠더 갈등, 지역 갈등… 갈등은 다양해졌고, 그만큼 사회는 더 조각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질문해야 합니다. 왜 우리는 이렇게 분열되는가? 단순한 의견 차이로는 설명되지 않는 이 현상, 그 심리적 배경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와 ‘그들’을 나누려는 본능
인간은 태생적으로 집단을 이루는 존재입니다. 소속감을 통해 안정과 생존을 확보해왔죠. 그런데 이 소속감에는 항상 ‘내 집단’과 ‘외 집단’을 구분하려는 경향이 동반됩니다.
심리학자 헨리 태지펠은 사회적 정체성 이론(Social Identity Theory)을 통해, 사람들은 단지 임의로 나눈 그룹에 속했을 뿐인데도 ‘우리 그룹’을 더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다른 그룹’에게는 편견을 갖는다는 걸 실험으로 증명했습니다.
이런 본능은 현대 사회에서도 그대로 작동합니다. 정치적 소속, 젠더 정체성, 직업적 배경, 세대 등 다양한 정체성은 모두 우리와 그들을 구분하는 기준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구분이 이해가 아닌 혐오로 발전할 때입니다.
불안과 위기의 심리가 분열을 키운다
분열은 보통 불안의 시대에 더 심해집니다. 경제적 불안정, 직업 시장의 위기, 정보 과잉 속에서 사람들은 심리적으로 위축됩니다. 이럴 때 우리는 내 문제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으려는 경향을 보입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스케이프고팅(Scapegoating)이라고 합니다. 희생양 만들기죠. 사회가 혼란스러울 때 특정 집단을 원인으로 지목하면, 분노와 불안은 그들에게 향하고, 사람들은 일시적인 통제감을 느낍니다.
예를 들어, 청년 세대는 “기성세대가 다 망쳤다”고 말하고, 노년 세대는 “요즘 젊은 것들은 버릇이 없다”고 반응합니다. 여성은 남성의 특권을, 남성은 역차별을 문제 삼습니다. 이런 감정은 실제 문제가 아니라 불안을 투사할 대상이 필요해서 생기는 심리적 반응일 수 있습니다.
정보의 분절, 공감의 단절
디지털 환경은 사회 분열을 더욱 가속화시킵니다. 우리는 이제 보고 싶은 정보만 볼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유튜브, SNS, 포털의 알고리즘은 사용자의 관심사에 맞는 정보만 반복적으로 보여주며, 점점 확증 편향의 고립된 방을 만들어냅니다.
그 결과, 서로 다른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는 대화의 공통 기반이 사라집니다. 같은 뉴스를 보더라도 전혀 다른 해석이 나오고, 공감은 점점 줄어듭니다. 우리가 어떤 정보를 보느냐보다 중요한 건, 서로 어떤 정보를 ‘못 보고 있는가’입니다.
결국 분열은 단지 의견 차이의 문제가 아니라, 공감의 단절이 만들어내는 결과입니다.
분열을 넘어서기 위한 조건
그렇다면 분열된 사회를 다시 연결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첫째, 자기 입장의 상대화입니다. 내가 속한 집단의 생각이 전부는 아니며, 다른 시각도 존재한다는 인정을 시작으로 대화가 가능합니다. “우리가 옳다”는 말이 아닌, “다른 관점도 있을 수 있다”는 말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둘째, 공통의 목표 회복입니다. 분열은 서로 다른 목표를 추구할 때 심화되지만, 공통의 가치나 목적이 확인되면 갈등은 줄어들 수 있습니다. 예컨대 ‘더 나은 미래’라는 목표는 세대나 이념을 넘어설 수 있는 키워드가 될 수 있습니다.
셋째, 경청과 질문의 문화입니다. 우리는 반박은 잘하지만, 질문은 하지 않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라는 질문은 때로 수많은 반박보다 더 강력한 변화의 촉진제가 됩니다.
결론 : 분열은 구조이자 감정이다
사회가 분열되는 현상은 단순히 구조적인 원인만으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 안에는 인간의 감정, 불안, 소속감, 두려움 같은 복합적인 심리가 얽혀 있습니다.
진짜 위협은 갈등이 아니라, 그 갈등을 대화할 수 없을 때입니다. 의견이 다른 건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는 우리가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을 ‘대화할 수 없는 존재’로 규정하는 순간입니다.
분열을 막는 건 위대한 지도자도, 정책도 아닐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의 질문, 한 사람의 경청, 한 사람의 거리두기 없는 시선이 분열된 마음 사이에 작은 다리를 놓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다리 위를 건너는 용기를 내는 것. 그것이 지금 우리 사회가 가장 필요로 하는 일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