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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옳다’는 믿음은 어디서 오는 걸까?

by throughall 2025. 5. 2.

‘우리가 옳다’는 믿음은 어디서 오는 걸까?

 

‘우리가 옳다’는 믿음은 어디서 오는 걸까?

정치적 갈등, 종교적 충돌, 사회적 논쟁의 이면에는 언제나 '우리가 옳다'는 확신이 존재합니다. 그런데 그 확신은 도대체 어디서 비롯되는 걸까요? 인간의 심리와 집단적 사고를 통해 그 뿌리를 들여다봅니다.

의견이 아니라 '정체성'이 된 확신

토론 중 상대방이 아무리 논리적인 말을 해도 받아들일 수 없는 경우, 경험해보신 적 있나요? ‘내가 틀렸을 수도 있겠네’보다는 ‘쟤는 뭘 몰라서 그래’라고 되받아치고 싶은 마음이 더 클 때 말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자신이 속한 집단이나 가치관이 **근본적으로 옳다**고 믿는 경향을 자주 보입니다.

그런데 이 믿음은 단순한 의견 차이나 경험의 문제로 끝나지 않습니다. 사회심리학에서는 이를 내집단 편향(Ingroup Bias)이라고 설명합니다. 자신이 속한 집단을 더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반대 집단을 자동으로 부정적으로 보는 심리죠. '우리는 착하고 정의롭지만, 저 사람들은 잘못됐어.' 어쩌면 이게 대부분의 갈등이 시작되는 출발점일지 모릅니다.

‘우리’라는 개념은 왜 그렇게 강력할까?

‘우리 편’이라는 말에는 묘한 안도감과 단합의 힘이 담겨 있습니다. 어린 시절, 반 대항 축구 경기만 해도 친구들과 갑자기 끈끈해지고, 같은 유니폼만 입어도 소속감이 생기죠. 이는 집단 정체성(Social Identity)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스스로를 설명할 때 ‘나는 누구인가’보다 ‘나는 어디에 속했는가’를 먼저 인식합니다. 그리고 이 ‘소속감’은 자존감과 직결됩니다. 결국 ‘우리가 옳다’는 믿음은 단지 의견이 아니라, 자아를 구성하는 핵심 중 하나가 됩니다.

그래서 누군가 우리의 신념이나 소속을 공격하면, 그것은 단순한 반대가 아니라 ‘존재를 부정당하는 일’처럼 느껴지게 됩니다. 그 순간 이성은 멀어지고, 감정과 방어 본능이 전면에 나서게 되죠.

왜 사실보다 믿음이 앞설까?

종종 우리는 믿고 싶은 것을 믿습니다. 객관적인 사실보다 ‘우리가 옳다’는 감정이 앞설 때가 많습니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확증 편향이라고 부르는데, 자신이 믿는 바와 일치하는 정보만 받아들이고, 반대되는 정보는 무시하거나 왜곡하는 경향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A와 B 두 정치 집단이 같은 사건을 접했을 때, A는 “봐라, 역시 우리가 옳았지”라고 해석하고, B는 “편향된 보도야”라고 반응합니다. 같은 사실을 보고도 서로 다른 진실을 만들어내는 겁니다.

여기에 집단 극화 현상(Group Polarization)이 더해지면 상황은 더 복잡해집니다. 비슷한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면 점점 더 극단적인 방향으로 생각이 치우치는 현상인데요, SNS처럼 닫힌 공간에서 같은 생각만 반복해서 소비하면 이 효과는 훨씬 강해집니다. 결국 ‘우리가 옳다’는 믿음은 더 단단해지고, 타인을 이해할 여지는 좁아지게 됩니다.

‘우리가 옳다’는 믿음의 위험성

문제는 이런 믿음이 때로는 배타적 사고, 차별, 심지어 폭력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역사적으로도 극단주의나 전쟁, 종교 갈등의 근저에는 늘 ‘우리가 진실을 알고 있다’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2000년대 초반, 사이비 종교 집단의 집단 자살 사건이나, 특정 정치 사상에 빠져 민주주의를 해치는 행위들 역시 이런 ‘확신’에서 비롯됩니다. 특히, 자신이 옳다고 믿는 집단이 도덕적 우위까지 점유하려 할 때, 그 믿음은 매우 위험한 무기로 변모할 수 있습니다.

더 무서운 건, 그 과정이 **논리적 판단이 아니라 감정의 연속**이라는 점입니다. 믿음은 본래 이성적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런 감정적 확신은 오히려 이성적인 대화를 불가능하게 만듭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옳다’는 믿음이 필요한 이유

이쯤 되면 ‘그럼 우리는 확신을 갖지 말아야 하나?’라는 의문이 생깁니다. 그렇진 않습니다. 신념 없는 공동체는 정체성도 가질 수 없습니다. 문제는 그 믿음이 닫혀 있는가, 열려 있는가입니다.

‘우리가 옳다’는 믿음을 갖더라도, 그것이 언제든 질문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다름을 틀림으로 단정하지 않고, 다른 관점을 존중할 여지를 남겨두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성숙한 신념’입니다.

개인적인 경험을 나누자면, 대학 시절 정치토론 수업에서 한 조원과의 격한 논쟁 끝에 오히려 친해졌던 일이 있었습니다. 서로의 입장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상대의 논리를 인정하고 들어준 그 순간부터 ‘내가 옳다’는 벽은 살짝 허물어졌던 기억이 납니다.

결론 : ‘우리가 옳다’보다 더 중요한 질문

우리는 모두 각자의 믿음과 기준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것은 어떤 면에서는 자존감의 기반이 되기도 하죠. 하지만 ‘우리가 옳다’는 말 속에는 질문이 없습니다. 대화도, 변화도, 성찰도 없죠.

진짜 중요한 건, ‘우리가 옳은가?’를 외치기보다, “왜 그렇게 믿게 되었을까?” “다른 관점도 가능하지 않을까?”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단지 내 편을 옹호하는 사람을 넘어서, 생각하는 사람, 열린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옳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옳음을 증명하는 방식은 말보다 태도에 달려 있지 않을까요?** 세상이 서로 다른 수많은 진실로 이루어졌음을 인정하는 순간, 갈등은 조금씩 대화로 바뀌기 시작합니다.